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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 의병훈련장 및 무기제조 장소
광주시 중산3로 광주기의열사릉원 내 광동혁명역사박물관은 아편전쟁(1840년)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료시까지의 주요 사건․인물․유물 등의 역사를 연구․ 전시하고 있다. 중국 1급 문물 20여점을 포함하여 문물․문헌 1만 3천여점, 전시품 1만여점, 역사사진 2만 5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ul. Turgeneva, 24, Khabarovsk, Khabarovskiy kray. 하바롭스크 투르제네프 거리 명예광장 2차 세계대전 승리 30주년을 기념(1985년) 하바롭스크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으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승리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5년 조성된 곳으로 광장 중앙에는 30m 높이의 대형 기념비와 반원형의 대리석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한가운데는 당시 사망한 32,662명의 극동군의 명부가 빼곡히 새겨져 있고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면 초병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비에는 소련영웅, 노력영웅, 영예훈장 등을 수여받은 하바롭스크인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광장에는 희생자를 위한 꺼지지 않는 불(영원의 불)이 타오르고 있고, 최근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ul. Turgeneva, 24, Khabarovsk, Khabarovskiy kray. 하바롭스크 투르제네프 거리 명예광장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 영광의 광장에 있는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으로써 트랜스피구레이션 성당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말로는 성모영면성당이라고 한다. 아무르 강변에 2001년 러시아 정교회의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총대주교인 알렉산드르 2세의 축복과 함께 그리스 정교 사원의 첫 돌이 세워졌다. 슬라브 광장에 구원 프레오브라젠스키 교회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사키에프스키와 모스크바의 성 구세주 사원 다음으로, 러시아 정교 교회들 중 세 번째로 큰 사원이다. 땅에서 금색 돔까지의 높이는 제단 측면에서 95m이니다 상단의 홀은 약 2000여명이 수용 가능하며, 하단은..
Выезжаем из центра по улице Муравьёва-Амурского, затем по улице Промышленная, у дороги справа овраг.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시내를 빠져나가 무라비예프-아무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하바로브스크 공장으로 향하여가다 프로뮈쉴렌나야 거리를 지난 후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계곡 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 한인사회당 창건자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가 처형된 곳이다. 1918~1920년 시베리아 내전 당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백위파와 외국 간섭 군에 의하여 처형되었던 곳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알렉산드라의 본명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탄케비치)으로 아버지는..
동해(東海)와 둥베이[東北 : 옛 지명은 만주] 지구 사이에 있으며, 한국에서는 연해주라고 한다. 러시아 연방 극동 지방의 지구들 가운데 가장 작으며, 최남쪽에 있다. 1926년 원래 소비에트 극동 공화국이었던 지역이 극동지구로 바뀌었고, 1938년 극동지구의 일부가 분리되어 지금의 프리모르스키 지구가 되었다. 최고높이가 1,855m에 이르는 시호테알린 산맥이 해안선과 나란히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이 지구의 주요강인 우수리 강(아무르 강의 지류)은 러시아 연방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며 북쪽으로 흐른다. 연안 평야는 좁고 항구도 거의 없으며, 짧고 물살이 빠른 작은 강이 몇 개 흐를 뿐이다. 남쪽에 있는 페트라베리코고 만(표트르 대제 만)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천연 입지조건이 잘 갖추어진 항구..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село Волочаевка, высота Июнь-Корань. 하바로브스크주 하바로브스크 보로차예프카 마을 뒤 이윤코란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 현장에서 희생된 빨치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 1922년 2월 볼로차예프카 전투 현장에서 희생된 빨치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볼로차예프카 전투는 러시아혁명군이 하바로브스크를 해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전투다. 비문에는 ‘118명의 빨치산이 잠들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2년 2월 10일 볼로차예프카 전투에 참전한 고려혁명의용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2월 11일 전투에서 승리하여 2월 14일 하바로프스크에 입성하였다. 이 전투에 참전한 한인들은 러시아 붉은 군대의 승리가 바로 조국의 독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