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시 유중구 칠성강 연화지 38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경에서 사용했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사 雙重喜慶(경사가 겹친다)"는 의미에서 도시의 명칭이 유래된 중경은 사천분지의 동남부에 있으며, 장강(長江)과 가릉강(嘉陵江)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중국 서남지구의 중요한 공업기지이다. 1997년 8월에 전국 4대 직할시 중의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역사가 오래되고 고대 파국의 도읍지였던 중경은 교외에 자연 풍경지와 역사적 명소가 매우 많다. 또한 삼협 수상 운수선의 시발점이며 수많은 삼협 유람선의 시발 및 종착 항구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연평균 기온이 18℃이며, 가장 추운 1월 평균기온이 7℃로 춥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 중경으로 옮겨온 뒤 입주했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사이다. 대한민..
절강성 가흥시 해염현 남북호풍경구 재청별장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흥에서 활동할 때 김구가 매만가 피난처 이후 사용했던 은신처 재청별장은 남북호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호 풍경구(南北湖風景區)에서 첫 번째로 건립된 근대식 별장이다. 해염현의 명망가인 주병수(朱丙壽)가 1916년 그의 둘째아들의 요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이후 김구는 일제의 수배를 받게 되었다. 김구는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을 받아 상해에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가흥에 도착한 직후 매만가 76호에서 생활하였으나,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저보성의 장남 저봉장(楮鳳章)의 처가의 별장인 재청별장으로 옮겼다. 이 별장은 저봉장의 부인 주가예(朱佳蕊)의 숙부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이었다. ..
절강성 가흥시 일휘교 17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항주에서 활동할 때 이동녕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잠시 피난 생활을 하던 곳 한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는 가흥시 일휘교(日暉橋) 17호에 위치해 있다.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이동녕ㆍ박찬익ㆍ엄항섭ㆍ김의한 등과 그 가족들도 가흥으로 피신하여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일휘교 17번지는 김구가 피신하여 있던 매만가 76번지와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일휘교 17호 건물은 청조 말년에 나무와 벽돌로 만들어졌다. 2층 건물로 네 칸의 방과 마당이 있다. 총 부지 면적은 904㎡이며, 전시 면적은 332.5㎡이다. 1995년 가흥시가 자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사진 및 당시 사용했던..
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 윤봉길의사 투탄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가흥으로 피신한 김구가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 직후 김구는 미국인 목사 피치의 집에 피신하고 있다가, 저보성(褚輔成)의 도움으로 가흥으로 피신하였다. 김구는 가흥으로 피신한 직후 ‘장진구’ 또는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저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梅灣街) 76호에 머물렀다. 김구와 관련된 유적지는 김구가 피난 시기에 머물렀던 건물과 ‘김구피난처 진열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총 부지면적은 1,420㎡이며, 건물 면적은 520㎡, 진열관 면적은 566㎡이다. 건물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2층 목조 건..